BGM : 캐리비안의 해적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2017 OST : He’s A Pirate - Hans Zimmer
https://youtu.be/dW3_gzvh5vI
십자군 전쟁은 유럽 중세시대의 종말을 고하였고 근대사회의 서막을 알리게 되었다. 이 시작은 '신 중심' 사회에서 '인간 중심'의 사회로의 회귀를 의미하였다.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에서는 철학과 윤리사상, 종교와 예술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시스템까지 모든 것이 인간 중심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스만 투르크의 지중해 무역항로와 실크로드 무역항로의 장악은 유럽 세계로 하여금 대항해시대로 나아가도록 몰아가고 있었다. 이번 Part 3에서는 대항해시대에서 벌어진 가톨릭 종교+전제군주 세력과 유대인과의 전쟁을 다루도록 하겠다. 이전 Part 1과 Part 2가 궁금하다면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s://gbcbaby.tistory.com/35
https://gbcbaby.tistory.com/36
오스만 투르크의 확장과 무역항로 점령에 의하여 유럽 세계는 신항로 개척에 나서야 했다.
아래의 지도와 같이 오스만 투르크는 지중해 무역항로와 실크로드 무역항로 모두 점령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오스만 투르크는 유럽 세계와 인도 및 중국 무역 사이에서 중개무역의 실권을 차지하게 된다. 중개무역의 실권을 차지했다는 의미는 엄청난 수수료를 차지할 수 있다는 이점을 오스만 투르크가 차지한 것이다. 따라서, 유럽 세계는 신항로 개척을 필히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갔다. 이때 가장 먼저 신항로 개척에 앞장섰던 국가가 있었으니 바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스파니아)이다. 두 국가는 유럽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지중해 무역과 실크로드 무역에서 변방이었다.
바스쿠 다 가마,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등 신항로 개척을 위한 도전자들은 목숨을 걸었다.
바스쿠 다 가마는 남쪽으로 향하였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향하였다. 이들은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특히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나아가면 언젠가 '인도'로 도착할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인도보다 더 동쪽에 있는 지팡구(Chipangu, 일본을 지칭한다.)라는 나라에 금이 엄청 많다고 적어두었다. 이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목숨을 건 항해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몰락한 귀족의 자손이었다. 그 당시 배를 타고 항해를 한다는 것은 현대에서 우주로 여행을 가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즉, 엄청난 자본이 필요한 것이다. 이들은 포르투갈 및 스페인 왕가의 담보를 토대로 유대인에게 자본을 빌리게 된다. 그리고 그 자본을 토대로 함대를 꾸리고 선원을 고용하였다. 그리고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수많은 여행가들이 신항로 개척에 도전하였을 것이며 이 자금 역시 유대인의 자금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유럽은 절실하였기 때문이다.
<출처 : 아틀라스 뉴스, 동양을 신비한 눈으로 바라본 마르코폴로, http://www.atlasnews.co.kr/news/curationView.html?idxno=4967 >
바스쿠 다 가마는 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인도로 가는 신항로를 개척하였다.
아래의 사진은 바스쿠 다 가마가 개척한 신항로 루트이다. 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인도로 가는 이 루트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유럽의 패권국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인도와의 무역을 통하여 후추와 향신료를 유럽에 대량 유통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기게 된다.
<출처 : 위키피디아, 다스쿠 다 가마 https://ko.wikipedia.org/wiki/%EB%B0%94%EC%8A%A4%EC%BF%A0_%EB%8B%A4_%EA%B0%80%EB%A7%88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서인도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서인도 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였다. 비록 콜럼버스는 인도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아메리카 대륙과 서인도제도를 발견함으로써 금을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사탕수수, 커피, 담배, 카카오, 목화 등이 생산되었기에 이를 유럽에 판매하여 막대한 부를 챙기게 되었다. 콜럼버스는 서인도제도의 원주민을 노예로 삼아 그들이 금을 캐도록 하였다. 서인도제도의 원주민들은 콜럼버스와 서양 사람들에게 온갖 수탈과 살해를 당하면서 금을 캐고 있었다. 그들은 결국 이러한 자신의 상황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멸종의 길을 선택하였다.
https://gbcbaby.tistory.com/8
<출처 : 위키피디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https://ko.wikipedia.org/wiki/%ED%81%AC%EB%A6%AC%EC%8A%A4%ED%86%A0%ED%8D%BC_%EC%BD%9C%EB%9F%BC%EB%B2%84%EC%8A%A4 >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원조, 스페인. 그러나 유대인을 배척하고 멸망의 길로 가다.
서인도 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에서 획득한 금은 유럽에 퍼져나가기 시작하였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신흥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과 더불어 군대를 양성하는데 막대한 자금을 사용해 왔다. 또한, 펠리페 2세는 본인을 로마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오스만 투르크를 배척하였고 루터 교회를 믿는 영국과 네덜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과 잦은 마찰을 빚어왔다. 군대를 양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펠리페 2세는 서인도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에서 획득한 막대한 자금이 있었음에도 계속 유대인에게 자금을 대출받아 사용해 왔다. 펠리페 2세는 총 4번이나 국가 채무를 이행할 수 없다는 디폴트까지 선언하였다. 또한, 가톨릭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대인을 배척하였고 이들에게 채무를 이행하지 않기 위해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거주중은 유대인들을 숙청하기 시작하였다.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이지 않는가? 그렇다. 바로 십자군 전쟁 패전 이후 유럽 중세사회에서 벌어진 일과 똑같이 발생한 것이다.
이 때 많은 유대인들은 두 루트로 피신하였는데 첫 째, 영국과 네덜란드로 거점을 옮겼다. 둘 째, 서인도제도로 거점을 옮겼다. 영국과 네덜란드에 거점을 옮긴 유대인들은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함선을 건조하는 기술과 화포 기술에 자금을 투자하여 이들 해군과 해적들을 무장시켰다. 이들은 유럽 각지에서 포르투갈과 스페인 상선을 습격하여 약탈하였다.
또한, 서인도제도로 거점을 옮긴 유대인들은 해적을 창설하였다. 그들 역시 화포 기술과 함선 건조기술을 토대로 해적들을 신식 무기로 무장시켰으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상선과 군함을 습격하여 그들이 싣고 가던 금과 각종 재화를 약탈하였다.
스페인이 그 당시 무적함대라고 자처하였지만 실상은 그러하지 않았다. 스페인의 군함은 화포 기술이 없었다. 그러나 영국과 네덜란드 해적, 그리고 서인도제도의 해적들은 화포기술이 있었다. 누가 이기는 싸움일까? 그렇다. 당연히 해적이 이기는 싸움이다. 게다가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면서 스페인과 펠리페 2세는 힘을 잃게 되었다.
<출처 : 파이낸셜리뷰, [역사 속 오늘리뷰] 4월 19일 영국 해군 스페인 무적함대 격파 http://www.financialreview.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988 >
<출처 : 위키피디아, 펠리페 2세 https://ko.wikipedia.org/wiki/%ED%8E%A0%EB%A6%AC%ED%8E%98_2%EC%84%B8 >
<출처 : 서울대학교, 근대초 스페인 제국의 흥기와 몰락, https://s-space.snu.ac.kr/bitstream/10371/69427/3/5628010104.pdf >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국가를 형성하고 영국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다. 스페인은 해적에게 털리고 네덜란드와 30년 전쟁에서도 털리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영국은 스페인이 장악하였던 제해권을 흡수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네덜란드 역시 독립하게 되면서 스페인을 몰락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두 국가는 바로 스페인으로부터 도망쳐 온 유대인들이 정착한 국가이다. 또한, 서인도제도는 어떠한가? 그렇다. 바로 이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을 영국의 식민지로 만드는 세력이 된다.
다음 편에서는 Part 4. 가톨릭 vs 개신교 종교전쟁과 왕권신수설을 다루도록 하겠다. 개신교의 성장은 유럽의 1차 산업혁명의 정신적, 사상적 배경이 되었으며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노예를 해방하는 계기가 된다. 왜 자본주의는 노예의 해방을 원했을까? 다음 편을 기대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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