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불멸의 이순신 OST - 칼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BP-uWHYwh9A
이번 포스팅의 주제는 임진왜란에 대한 내용이다. 필자는 임진왜란이 동양판 십자군 전쟁이었다는 주제로 포스팅을 할 계획이다. 이 내용은 주로 재야사학계에서 주장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물론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된 계기는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십자군 전쟁설 역시 그 원인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내용 역시 역사적 검증이 어느 정도 완료된 내용이고 이순신 장군 관련한 영화나 드라마에도 이 내용이 고증되어 암시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 내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PS. 그래서 일본에서는 가톨릭 신자와 기독교 신자가 많지 않은 것이다.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가 에도 막부를 수립한 이후 이들은 가톨릭 신자를 모두 숙청하였기 때문이며 에도 막부는 가톨릭 종교의 전파를 막고자 일본 전통 종교인 신토와 불교 및 유교를 장려하였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본 전국 시대의 마침표를 찍다. 그러나......
전국 시대 일본의 3대 영웅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다. 이들과 관련되어 있는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바로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주제로 이 세 사람이 토론을 한 것이 그 예시이다.
오다 노부나가 :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게 하도록 어떻게든 설득시키겠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 까지 기다리겠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결국 일본의 전국 시대를 종결시켰으며 일본 열도를 통일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통일을 하였음에도 정권의 위협을 받게 되는데 바로 포르투갈과의 무역을 독점하여 유럽의 신문물을 받아들인 키리시탄(キリシタン)과 그 세력 때문이었다. 포르투갈과의 교역을 위해서는 꼭 가톨릭으로 개종하여야 했기 때문에 키리시탄은 포르투갈과의 무역권을 독점하게 되었다.
일본과 포르투갈이 무역을 하게 된 계기는 1550년 포르투갈 무역상선이 일본 쓰시마번(현재 나가사키(長崎) 현과 사가(佐賀) 현) 히라도(平戶)항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은 일본과 교역을 하는 목적이 무역 확대와 가톨릭의 포교였다. 그리고 쓰시마번에서는 가톨릭이 포교되면서 그 신자가 6만 명에 이르게 된다. 신식 무기인 화승총과 가톨릭이라는 종교로 무장한 일본 쓰시마번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성장하게 된다. 무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바로 군사력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참고 사이트 : 동아일보, [신문과 놀자!/클릭! 재밌는 역사]‘쇄국’ 펼치던 일본은 어떻게 서양 국가들과 교류했을까?, 2021.01.13,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10112/104893357/1 >
당시 서양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지구를 절반으로 나누어 먹기로 협의된 상태였다.
대항해시대를 열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15세기 후반인 1494년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토르시데야스 조약(스페인어 : Tratado de Tordesillas, 포르투갈어 : Tratado de Tordesilhas)를 체결한다. 이 조약의 내용은 대서양과 태평양 상에 새로운 분계선을 그어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그 영토를 나누어 가진다는 것이었다.
아래의 그림은 토르시데야스 조약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카보베르데 섬 서쪽 서경 46도를 기준으로 남북방향으로 선을 그어 동쪽은 모두 포르투갈이 서쪽은 모두 스페인이 차지한다는 협약이었다. 따라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인도 및 동아시아를 식민지로 삼고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을 차지하는 것이 되었다.
<참고 사이트 : 위키피디아, 토르시데야스 조약, https://ko.wikipedia.org/wiki/%ED%86%A0%EB%A5%B4%EB%8D%B0%EC%8B%9C%EC%95%BC%EC%8A%A4_%EC%A1%B0%EC%95%BD >
따라서 포르투갈은 인도의 중개무역과 명나라(중국) 그리고 일본까지 진출하게 되었으며 식민지 개척을 위하여 가톨릭 종교를 인도, 명나라, 조선 및 일본에 가톨릭을 포교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여파는 전국 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을 위협하게 된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일본인과 그의 세력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의 지시에 잘 따르지 않았으며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국가관과 지배 구조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게 된다. 게다가 가톨릭의 포교 활동이 일본 전역에 퍼지게 되면 국가를 통치하는 데 있어서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포르투갈은 쓰시마번을 거점을 삼아 일본을 식민지화하려고 한 것이다.
신흥 종교의 포교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
우리는 이점을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 국가에 신흥 종교가 포교된다는 것은 그 국가의 기반 사상을 위협하는 것이다. 정치와 종교는 같이 움직인다. 우리는 제정일치 국가 체계를 전근대적인 유산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종교는 개인의 국가관, 철학, 생활 및 행동 양식을 프로그래밍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으며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하니 국가들은 국교(國敎)를 설정하고 그 사상을 국민과 백성에게 주입시킨다. 이 사상이 주입된 국민과 백성은 국가에 충성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며 국가의 발전을 위한 인적 자원으로 활용된다.
따라서, 신흥 종교가 포교된다는 것은 기존 국가의 국가관, 철학, 생활 및 행동양식이 다시 신흥 종교와 그 종교를 믿는 국가에 입맛에 맞게 재프로그래밍되기 때문에 기존 국가의 입장에서는 신흥 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행위인 것이다. 즉, 반란의 씨앗이 심어지는 것이다.
<참고 사이트 : 주간조선, 성리학·가톨릭과 충돌하며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다, 1638년 일본 : 옛 세계가 멸망하고 ‘신질서’가 수립되다, 2014.06.01,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7190 >
<참고 사이트 : 신앙신보, 임진왜란과 십자가, 2018.11.04, https://theweekly.co.kr/%EC%9E%84%EC%A7%84%EC%99%9C%EB%9E%80%EA%B3%BC-%EC%8B%AD%EC%9E%90%EA%B0%80/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선택은 전쟁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결국 전쟁을 선택하게 된다. 이는 포르투갈의 의도이기도 하였다. 키리시탄의 세력을 일본 내에 뿌리내리고 세력을 키웠으니 이제 조선과 명나라를 개방해야 하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의 동아시아 식민지 전략과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권력 유지의 열망이 만나 탄생한 전쟁이 바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인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입장에서 임진왜란은 다음과 같은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첫 째, 일본 내의 키리시탄의 세력이 조선과 명과의 전쟁에서 모두 전멸당하여 없어지는 것이다. 즉, 차도살인(借刀殺人) 전략을 실행한 것이다.
둘 째, 키리시탄이 모두 없어지지 않더라도 조선과 명나라를 일본이 정복하여 자신의 영토아래 둘 수 있다면 이 역시 큰 이득이 된다. 즉, 키리시탄의 세력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조선과 명나라 모두 정복하니 일석삼조( 一石三鳥)가 된다.
셋 째, 조선과 명을 정복하여 일본의 영토에 편입하게 되면 포르투갈과 스페인과의 전쟁이 벌어져도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이는 필자의 추측일 뿐, 역사적 기록에서는 찾을 수는 없었다.)
당시 조선과 명나라는 국가가 매우 안정적인 상태였다.
당시 조선과 명나라의 상황을 보자. 조선은 1,393년에 개국하여 임진왜란이 발생하였던 1,592년까지 약 200년간 국가를 안정화한 상태였다. 조선의 주요 종교였던 유교도 뿌리내린 상태였으며 성리학을 바탕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러한 국가를 포르투갈이 무역과 가톨릭 포교를 통하여 국가를 흔들기에는 매우 어려움이 따른다.
명나라도 상황은 비슷하다 명나라는 1,368년 개국하였고 역시 유교와 성리학이 뿌리내려 국가가 운영되어 있었다. 즉, 임진왜란 발발 당시 조선과 명나라는 국가가 아주 안정적으로 운영되어 있었고 그에 반해 일본은 이제 막 전국 시대를 마무리 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포르투갈은 일본의 혼돈 상황에 무역과 가톨릭 포교를 통하여 식민지 건설의 씨앗을 심고 일본을 이용하여 전쟁을 일으켜 조선과 명나라까지 식민지로 삼으려고 하였던 것이다.
임진왜란의 결과는 포르투갈의 실패로 끝이 났다. 그러나....
임진왜란의 결과는 모두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일본은 결국 조선과 명나라를 정벌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잡고 에도 막부 시대를 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대대적으로 키리시탄을 토벌하였으며 이에 성공하였다. 키리시탄은 결국 음지로 숨어 자신의 종교활동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으며 가톨릭 관련 서적이 모두 불법이 되었으므로 구전을 통하여 종교활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즉,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목표였던 키리시탄의 숙청에 대해서는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필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기점으로 하여 일본이 조선의 국력을 앞지르는 시기가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조선의 경우, 국력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 되었다. 그리고 가톨릭 신자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 이후 청나라가 중원을 통일하고 청나라에게는 저항조차 해보지 못하게 된다.
명나라의 경우, 결국 조선을 도와준 대가로 명나라는 청나라에 의하여 멸망하게 된다.
글을 마치며
필자는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가톨릭과 기독교를 비난하고자 이 글을 작성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필자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바로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역사와 현재를 비교하기 위하여 작성한 것뿐이다. 필자 역시 집안의 모태신앙이 기독교이며 가톨릭 세례도 받은 이력이 있다. 그러나, 역사는 필자의 개인적인 배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임진왜란이 동양판 십자군 전쟁이라는 내용을 알아보았다. 필자는 아직도 세계가 '제정일치' 국가 시스템 하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는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물론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정치계는 과연 어떠한가?
21대 국회(2020년~현재)에서 활동중인 국회의원의 종교 현황은 아래와 같다. (2020년도 기준)
1) 국회의원 의석수 : 300석
1-1) 가톨릭 신자 : 79명(26%)
1-2) 기독교 신자 : 125명(약 42%)
1-3) 불교 신자 : 35명(약 12%)
과연 우리나라에서 종교가 정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가? 과연 우리나라의 가톨릭과 기독교가 정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사실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도 아직은 제정일치 사회인 것이다.
<참고 사이트 : 뉴스파워, 제 21대 국회 각 종교 당선자 숫자는?, 2020.04.22, http://www.newspower.co.kr/45918 >
<참고 사이트 : 크리스천투데이, 기독 국회의원, 102명→125명으로 증가, 2020.06.24,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32566 >
<참고 사이트 : 한국 불교, 21대 총선 불자 국회의원 총 35명 당선, http://www.kbulgy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21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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