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Studio EIM - 잊지 않기 위하여 - 아이단, 마비노기 영웅전 OST
https://www.youtube.com/watch?v=ENSr-NIRzRs&list=PLRVCKaeN_8raa60C9_PDP-xytT9MfQppq&index=2
이번 포스팅은 '대한민국 정치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시리즈 물로 계획하였다. Part 2 두 번째 포스팅은 대한민국 정당 중 보수 세력인 국민의 힘에 대한 글이다. 국민의 힘은 사실 계파라는 것이 크게 존재하지 않지만 굳이 한 세력을 꼽자면 상도동계 즉 김영삼 계파이다. 필자는 대한민국 국민들께서 정치 성향을 선택함에 있어 필히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정당과 이념을 선택하라"라고 강조하고 싶다. 정치는 어떠한 미사여구를 붙여도 결국은 "집단의 이익"을 위한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다만, 여기서 집단이라는 개념이 특정 정당이 되는지 아니면 국가 전체가 되는지에 따라 다를 뿐이다.
보수란 무엇인가?
여러분께 질문하고 시작하려고 한다. 보수란 무엇인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서는 보수를 정의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필자가 사전적 의미를 먼저 아래에 명시해 보겠다.
보수주의(保守主義, Conservatism)란 지킬 보(保)와 지킬 수(守)라는 한자를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최고라고 생각되는 것을 보존하려는 정치 철학을 말한다. 즉, 기존 사회 체제의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정치 이념이다. 산업혁명 초기 서양 사회에서 보수주의는 자유 무역에 대한 보호 무역의 지지, 가톨릭·개신교의 전통 가치의 보존 등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수입해 오면서 보수주의의 의미가 왜곡되어 버렸다. 대한민국 입장에서 보수주의가 되려면 한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전통 사상과 정신, 예법 등을 강조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보수 세력은 오히려 이들을 파괴하여 왔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보수 사상은 바로 미국에게서 직접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보수 세력이 주로 믿고 있는 종교는 기독교이다. 기독교에서는 대한민국 고대의 역사를 부정한다. 환국 -> 신시배달국 -> 고조선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는 이유는 바로 기독교의 역사보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이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태양 숭배 사상과 북극성 신앙의 샤머니즘을 부정한다.
아래의 사이트를 참고해 보자.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믿는다. 그 시기는 대략 기원전 4천 년으로 잡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한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만들어야 한다. 만약 대한민국 역사에 환국과 신시배달국이 인정되는 순간 기독교의 논리는 완전히 깨져버리기 때문에 이들은 철저히 막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창조론보다 앞서있는 또 다른 문명인 수메르 문명에 대해서는 부정하지도 못하고 있다. 반면 환단고기는 환국->신시배달국의 역사와 수메르 문명 간의 역사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더욱더 신빙성이 있고 근거가 있는 것인가?
<참고 사이트 : Answers in Genesis, Bible Timeline, https://answersingenesis.org/bible-timeline/ >
따라서, 대한민국의 보수는 보수가 아닌 것이다. 이들은 과연 무엇을 지키는 것인가?
<참고 사이트 : 위키피디아, 보수주의, https://ko.wikipedia.org/wiki/%EB%B3%B4%EC%88%98%EC%A3%BC%EC%9D%98 >
군사 정권의 뿌리를 잘라내 버리는 김영삼 계파
김영삼 계파는 권력을 잡은 후 철저하게 군사정권 시절의 군부 세력을 제거하였다. 그 첫 번째 신호탄이 바로 금융실명제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긴급재정경제명령 제16호 발동하여 "금융실명제 및 비밀보장을 위한 법률"을 전격적으로 실시하였다. 이로써 대한민국 국민들의 모든 자산의 이동을 국세청에서 확인이 가능하게 되었다. 금융실명제의 진정한 목적은 하나회 등 군사 정권 세력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하여 운영하였던 비자금을 모두 찾아내어 압류하는 것이었다.
<참고 사이트 : 위키피디아, 금융실명제, https://ko.wikipedia.org/wiki/%EA%B8%88%EC%9C%B5%EC%8B%A4%EB%AA%85%EC%A0%9C >
<참고 사이트 : 중앙일보,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 …"YS 아니면 못 했을 것", https://www.joongang.co.kr/article/19115499#home >
두 번째, 율곡 사업 국정 감사이다. 율곡 사업은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정권 시절 미국 리처드 닉슨의 닉슨 독트린에 의하여 주한미군이 모두 철수하려는 것에 대비하기 위하여 자주국방의 기치를 걸고 수행한 사업이다. 이 당시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국방력은 북한보다 수준이 낮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제1차 율곡사업은 1974∼1981년간에 3조 1,402억 원을 투자하여 주요 전력을 증강하고 방위산업을 육성했다. 그러나 투자가 분산되고 무기체계의 선정에 착오가 일어난 데다 운영유지비가 급증하는 등의 이유로 대북한 전력비가 1973년의 50.8%에서 1981년도에는 54.2로 8년 동안에 불과 3.4%의 전력격차를 줄이는 데 만족해야 했다.
아니다. 이 당시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하여 자금을 사용해야 했고 핵무기는 극비리에 개발해야 했으므로 자금의 출처가 명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즉, 특정 무기를 더 비싸게 산 것처럼 꾸며 자금을 빼돌리는 방식으로 한 것이다.
제2차 율곡사업기간 동안 총 투자규모 5조 3,438억(국고 5조 3,088억 원, FMS차관 1조 350억 원 0으로서 이 중 차관원리금 상환액 1조 160억 원을 제외한 5조 3,280억 원이 실제 투자되었고, 군별로는 육군이 2조 6,471억 원(49.7%), 해군이 1조 658억 원(20.2%), 공군이 1조 3,389억 원(24.9%), 그리고 통합사업이 2,761억 원(5.2%)으로 구성되었다.
△ 전력증강의 추진 성과
구 분 | 1차 율곡(’74~’81) | 2차 율곡(’82~’86) |
투자비 (국방비 대비) |
3조 1,402억원(31.2%) | 5조 3,280억원(30.5%) |
추진 내용 | .노후장비 교체 .전방지역 진지축성 .고속정 건조 .항공기(F-4) 구매 |
.자주포, 한국형 전차, 장갑차 개발 .주요 전투함정 건조 .F-5 전투기 기술도입 생산 |
<참고 사이트 :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율곡사업, https://www.archives.go.kr/next/new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6406&sitePage= >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한 후에도 전두환 대통령이 핵개발을 비밀리에 계속 진행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만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 역시 핵개발을 비밀리에 진행한 것이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정부가 발전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해 핵무기의 75%를 국산화하는 이른바 ‘75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추진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한 분은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이다.
https://gbcbaby.tistory.com/55
<참고 사이트 : 조선일보,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하던 핵 개발, 노태우 정부 때 비밀리에 재개했다”, https://www.chosun.com/culture-life/broadcast-media/2022/05/21/Z7AJG6CZQJFLRBGQXXMCKXGASI/ >
율곡 사업 감사 당시 왜 방만하게 운영되어 보였는지 이제 알겠는가? 물론 실제로 그 사이에서 비리 등으로 이익을 취한 자와 세력은 존재한다. 그러나 율곡 사업은 대한민국의 자주국방을 위하여 핵개발을 추진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이 핵을 갖는 것을 가장 반대했던 국가는 바로 동맹국인 미국이다.
김영삼 계파는 철저한 반일이었다.
대한민국이 반일정서가 언제부터 극렬해졌는지 아는가? 바로 김영삼 계파가 정권을 잡던 시기였다. 김영삼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민족정기를 바로 잡는다"는 명분으로 반일정서를 고조시키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사건은 아래와 같다.
1. 조선총독부 철거
2. 쇠말뚝 사건
민족의 정기를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김영삼 계파는 조선총독부 철거를 단행하였다. 또한, 일제 강점기 당시 일제가 한반도 전역에 쇠말뚝을 박았다고 주장하였다. 쇠말뚝을 박은 이유는 한반도에 흐르는 땅의 기운(地氣)을 끊었다는 것이다. 즉, 풍수지리학을 대입한 것이다.
이후 대한민국에는 반일 감정이 급격히 치솟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는 정당과 정치인도 늘어났으며 이들은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취하게 된다.
<참고 사이트 : 중앙일보, 김동길 “조선총독부 그대로 뒀으면 민족정기 앙양됐을 것”,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513#home >
<참고 사이트 : 뉴스톱, '일제가 쇠말뚝을 박았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이문영의 유사역사학 체크] 사라지지 않는 '쇠말뚝 괴담'의 기원과 유형, https://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484 >
일본의 버르장머리 고쳐주려다가 IMF 때 미국과 일본의 금융치료(?)를 맞게 된 대한민국
김영삼 정부가 대한민국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반일감정을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영삼 정부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이루어진 한중수교를 이용하여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 결과는 IMF라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김영삼 정부의 친중 정책은 미국의 분노를 샀으며 반일 노선은 대한민국을 동맹국 사이에서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 김영삼 정부는 IMF 구제금융 요청을 막기 위하여 일본에 자금을 빌리려고 노력하였으나 일본은 미국이 막고 있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참고 사이트 : 한겨레, 중국 투자성공률 80%/대부분 5년내 회수… 현지금융도 ‘만족’, 1994.2.24, https://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293406.html >
<참고 사이트 : 중앙일보, 중국,「팀」재개 중지 요구/김 대통령에게/패트리어트 배치도 반대, 1994.3.29, https://www.joongang.co.kr/article/2869440#home >
<참고 사이트 : 아시아 금융 위기, 위키피디아,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C%8B%9C%EC%95%84_%EA%B8%88%EC%9C%B5_%EC%9C%84%EA%B8%B0 >
<참고 사이트 : 우리역사넷, IMF 사태,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i501300&code=kc_age_50 >
IMF 당시 대한민국이 얼마나 위기였는가?
1. 대기업 30개 중 11개만 생존(부도가 났지만 공적자금으로 회생한 기업도 생존에 포함)
2. 환율 1달러 당 1,995원 (최대치)
3. 주식 부동산 대폭락, 이 당시 달러로 자금을 대출받은 개인, 기업이 많았는데 환율까지 폭등하니 답이 없었다.
4. 시중 단기 금리 20% ~ 30%까지 급증
PS. 필자는 이 글을 쓴 이유가 김영삼 계파와 지지자를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다시 한번 밝힌다. 이들은 군사정권의 유산을 폐기하는 것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유산과 정체성을 삼은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혹하였다. 한미일 군사동맹을 흔들고 중국과 친해지려고 하였다. 하나회 척결을 위하여 금융실명제를 실시하였으나 결국은 해외 자본이 유출되는 결과를 낳았다. 1인당 GDP 1만달러에 집착하는 나머지 환율 유지를 위하여 달러를 유출시켰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미국이 북한을 직접 타격하려고 하자 막은 것도 김영삼 계파이다. 대한민국에 반일감정을 부추겨 일본과의 관계를 최악으로 이끌었으며 아시아 금융위기가 다가오자 미국에게도 일본에게도 버림받은 것이 김영삼 계파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들께서 정치적 성향을 선택할 때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고 대한민국에 이익을 가져오는 정치가와 정당이 누구인 지 진지한 고민을 해보라고 권하기 위하여 이 글을 작성하였다. 김영삼 계파는 군사정권이 사라지자 보수 우파의 공백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들의 정책이 과연 보수 우파의 정책인가?
다음 글은 Part 3. 더불어민주당 독립군 계파이다. 그리고 Part 6까지 구성되어 있으며 제목은 아래와 같다.
Part 2. 국민의 힘 김영삼 계파
Part 3. 더불어민주당 독립군 계파
Part 4. 국민의 힘 친미 계파
Part 5. 친미 친일 계파(이 중에는 좌우가 없다)
Part 6. 국익파(이 중에도 좌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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