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Two Steps From Hell - Cannon in D Minor(Battlecry)
https://www.youtube.com/watch?v=RKmw9oS__MM
한유동조론이란 한민족과 유대인이 공통의 조상을 가지고 있는 형제 민족이라는 이론이다. 필자는 이 이론과 주장이 사실이며 그 근거를 제시하는 포스팅을 작성하고자 한다. 필자가 기본 근거로 삼고 작성하는 서적은 바로 안경전의 역주본 환단고기와 이리유카바 최가 쓴 서적 그림자 정부 정치 편이다. 환단고기에 대하여 알고자 한다면 아래의 포스팅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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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일유동조론도 존재한다. 그러나 일유동조론이 참이 되려면 한유동조론도 참이 될 수밖에 없다. 즉, 우리 한민족과 일본 그리고 유대인이 공통의 조상을 공유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유목민족에게 민족이란 피부색, 인종 등을 따지지 않는다. 유목민족에게 민족이란 공통의 문화와 풍습을 공유하면 같은 민족이다.
근거 1 : 복희여와도에 그려져 있는 프리메이슨의 심볼
복희여와도를 보자 이 그림에서 좌측은 여와(女媧), 우측은 태호복희(太皞伏羲)이다. 이 두 분을 중국 창세 신화의 주인공으로 묘사하는 데 아니다. 이 두 분은 바로 동이족(東夷族)이다. 필자는 동북공정 관련 포스팅에서 중국의 삼황오제는 모두 동이족이며 동이족은 우리 한민족의 조상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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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와가 한 손에 쥐고 있는 것은 규(規) 즉, 컴퍼스이다. 그리고 태호복희가 한 손에 쥐고 있는 것은 곡척(曲尺) 즉, 직각자이다. 그렇다. 직각자와 컴퍼스는 프리메이슨의 심볼이다. 전설에 의하면 여와는 컴퍼스를 들고 서쪽으로 이동하였고 태호복희는 직각자를 들고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여와를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에서 야훼 혹은 여호와라고 부른다. 재미있는 사실은 발음까지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PS. 특이한 점은 동양에서는 여와를 여성으로 묘사하는데 유대교, 가톨릭 그리고 개신교에서는 여호와 혹은 야훼를 남성으로 묘사한다. 본래 여성신이었지만 현재는 남성신으로 변경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여성의 시대가 되면 다시 여성신으로 바뀔 것이다.
프리메이슨(freemason)은 비밀 조직이다. 메이슨은 우리말로 바꾸면 석공(石工) 또는 장인을 뜻하며 특히 뛰어난 석조 건축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다. 메이슨의 역사는 기원전 2600년경 '야발(Jabal)'이라는 사람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기하학을 발견하고 연구 발전시켜 체계화한 내용을 돌기둥 밑에 새겨놓았으며, 이것을 '노아의 홍수'가 지난 다음 이집트의 성현이라 불리는 헤르메스가 발견하고 깨우치고 더욱 발전시켰다.
이들의 지식은 니므롯 - 아브라함 - 유클리드를 통하여 더욱더 체계화되었고 수많은 메이슨들이 이지식을 전수받았다. 이들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지식을 토대로 큰 건물을 지었다. 궁전과 성전 등 국가의 주요 건축물은 모두 메이슨의 손으로 탄생하였다. 따라서 메이슨은 상당히 존경받는 직업이었다.
특히, 성전을 짓는다는 것은 굉장히 신성한 일이었으므로 중요한 일은 모두 사제들이 도맡아 했다. 즉, 메이슨 중에 최고 메이슨은 사제이면서도 석공의 지식과 지혜를 물려받은 자만이 가능하였으므로 특별히 더 큰 존경과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바로 이들을 프리메이슨(freemason)이라고 불렀다. 사제이면서도 석공의 지식과 지혜를 물려받은 프리메이슨들은 성전과 궁전을 짓기 위하여 여기저기 이동하였기 때문에 이동의 자유가 보장된 사람이었다. 동시에 건축 설계, 공정 감독 및 사제의 역할에 종사하는 '고급 건축가'를 의미하였다.
근거 2 : 복희여와도에 그려진 태양과 달, 별자리의 의미 : 주기도문과 제세이화
복희여와도에는 위에 태양 아래에 달 그리고 우측에는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크게 두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 째, 하늘의 움직임 즉, 천문 현상을 그대로 지상에 구현시킨다. 즉, 프리메이슨이 문명과 세계를 건설할 때 천문 현상을 중요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를 우리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주기도문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를 영어로 쓰면 아래와 같다.
"Thy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그리고 이 사상은 고대 환국 - 신시배달국 - 고조선으로 이어지는 개국 이념이다. 이를 우리는 재세이화(濟世理化)라고 한다. 즉, 유대인의 사상과 우리 조상의 사상이 같음을 알 수 있다.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천문현상에 맞추어 도시를 건설하고 문명을 건설하는 것을 말이다.
<참고 사이트 :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복희여와도(伏羲女娲圖),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435 >
근거 3 : 신라 제왕가와 조선 왕가의 전설 : 금척전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는 6개의 촌장의 추대로 신라의 제왕이 된다. 신라의 제왕이 가지고 있던 세 가지 보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금척, 옥적(옥으로 만든 피리), 화주(태양광을 모아 불씨를 만드는 수정 돋보기)이다. 즉, 신라의 제왕이 된다는 것은 금척을 가져야 했다. 금척에는 제왕의 통치이념을 수리(數理, 수학의 이치)와 천문학이 표현되어 있었는데 바로 북두칠성과 삼태성이 그려져 있다. 그만큼 금척은 우리 한민족에게 제왕의 상징을 갖는다.
<참고 사이트 : 프레시안, 금척리 고분에 감춰진 박혁거세의 금자, [김유경의 '문화산책']<6> 경주풍경 ⑤, 2010.12.24,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08992 >
<참고 사이트 : ◎충절의 고장 양산, 신라선도의 산실, 박혁거세의 금척(金尺)과 박제상의 징심록(澄心錄), 2015.09.15, https://www.yangsa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54992 >
PS. 당시 신라의 제왕을 거서간(居西干)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거서간이 천자(天子)라는 뜻을 가진 음차문자이다. 이 문자가 중앙아시아에서는 게세르 칸 혹은 게세르 한이라고 불렸으며 이 단어가 서양 로마와 로마를 계승하는 국가에서는 카이사르로 불렸다. 즉,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왕이라는 단어를 똑같이 사용한 것이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꿈에서 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그림이 지금도 이어진다. 아래의 그림은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은수사에 있는 금척수수도이다. 그리고 이 절은 전북 진안군 마이산에 위치하고 있다.
<참고 사이트 : 디지털진안문화대전, 금척수수도, http://jinan.grandculture.net/jinan/toc/GC05800841 >
근거 4 : 상투와 편두 문화
우리나라에서도 편두 문화가 존재하였다. 편두란 두개골을 뒤로 길게 인위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도 이 풍습이 있었다는 근거가 존재한다. 진수(陳壽, 233~297년)가 쓴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에는 "삼한(三韓)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곧 돌로 그 머리를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려고 하므로, 지금 진한(辰韓) 사람의 머리는 모두 납작하다. 왜(倭)와 가까운 지역이므로 남녀가 문신(文身)을 하기도 한다"라고 적혀 있다.
우리나라에서 김해 예안리 고분에서 발견된 50여 기의 편두 인골이 출토되었다. 편두는 일본, 필리핀, 이집트 및 마야 문명 등에서 발견되었다. 왜 이들은 편두를 하였을까? 그것은 바로 북극성 신앙을 믿었기 때문이다. 북극성 신앙의 특징은 인간의 영혼이 북극성으로부터 내려와 인간의 정수리에 들어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북극성 신앙에서 인간의 탄생을 점지(點指) 즉, 인간을 태어나게 해주는 존재가 바로 서양에서는 여신 마고(Mago)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삼신할매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전통 샤머니즘에 보면 가장 음기가 가득하다는 새벽 3시에 북극성 방향으로 맑은 물을 뜬 후 흰 소복을 입고 비는 제사가 바로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기도 의식인 것이다.
이 편두 문화가 변형된 것이 바로 상투 문화이다. 두개골을 정수리 쪽으로 길게 변형시키는 대신 머리카락을 뒤로 묶어 위로 세운 것이다. 그 의미는 편두와 동일하다. 그리고 이러한 북극성 신앙을 믿는 문화를 가진 민족은 국가의 지배 계급이 되었다.
유대인 역시 상투를 트고 키파라는 모자를 쓰고 다닌다. 키파는 편두 혹은 상투를 튼 머리 부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착용하는 유대인 전통 모자이다. 아래의 사진을 보자. 딱 정수리를 가리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상투를 튼 위치와 동일하다.
<참고 사이트 : 중앙일보, 고대 사회 전세계 문화권에 고루 존재했다는 특이한 '성형', 2017.11.08,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095591#home >
근거 5 : 복잡한 제사 문화와 천문학 발달
한민족의 제사 문화와 유대인의 제사 문화는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공통점이 존재하는 데 바로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의아할 것이다. 제사라는 것이 당연히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필자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전 포스팅을 통하여 오직 천손(天孫)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다고 올린 적이 있다. 오직 천손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으며 오직 천손만이 이 땅을 다스릴 수 있는 제왕(帝王)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말이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천문 관측이 가능할 수준의 천문학이 발달되어야 한다. 서양에서는 왜 영미 단위계(Imperial and US customary measurement systems)를 통하여 시간과 길이의 단위를 통일시켜두고 있다. 동양에서는 오로지 천손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비추어 볼 때 유대인과 한민족은 천손강림사상을 그대로 이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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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치며
우리는 역사를 바라볼 때 역사를 기록한 조상들은 모두 지배계급이었다는 점을 인지하여야 한다. 지배계급의 조건이 바로 문자를 쓸 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족주의사관을 벗어던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커다란 인류의 문명사와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왜 이 거대한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첫 째, 농경 사회가 시작되면서 중앙집권적인 왕권과 국가의 발전 때문이다. 농경 사회는 인류를 정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정착한 땅을 지키기 위하여 외부의 사람들을 들이지 않게 되었으며 본래 유목민족의 전통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목민족의 전통을 잊지 않고 지켜온 민족도 존재하니 그들이 바로 유대인이며 아슈케나지 유대인인 것이다.
둘 째, 민족주의사관 때문이다. 민족주의사관으로 역사를 해석하니 태곳적 역사가 이해 안 되는 것이다.
즉, 농경 사회가 시작되면서 유목민족의 전통과 역사를 잃어간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 초기 북쪽에 살던 유목민족과의 관계도 단절되고 서로 적이 되면서 완전히 유목민족의 역사를 우리는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민족주의사관까지 더해지니 한민족의 고대 역사가 이해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본래 여러 인종과 여러 민족이 다양하게 섞여 살아왔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고유 풍습을 이해하고 따르는 사람이 바로 우리 민족인 것이다.
부산 가덕도에 50여 점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소위 굴장이라고 불리는 특이한 장례풍습의 형태로 누워있었다. 굴장이란 태아가 어미의 뱃속에 있는 것과 같이 몸을 쭈그리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 유골 중 10 여개의 유골을 DNA 검사한 결과 유럽형 유전자가 발견되었다. 그렇다. 이들은 백인이었던 것이다.
<참고 사이트 : KBS 뉴스, [앵커&리포트] “7천 년 전 유럽형 인류가 한반도에”, 2014.09.11,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2928198 >
부산 가덕도에 왜 백인이 존재하는가? 민족주의사관을 가진 이들은 이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필자는 신라의 제왕가 즉 성골(星骨)이 백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박혁거세가 제왕의 자리에 올라 거서간이라 칭한 이유가 이해되는 것이다. 그리고 신라에는 화랑도가 존재하였으며 남성이 하얗게 화장을 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또한, 신라는 당시 화장 기술이 매우 발달하였다. 화장을 하여 하얗게 보이는 것이 미의 기준이었다. 현대 한국의 기준 역시 동일하지 않은가?
다음 포스팅은 대한민국에서 욕을 먹은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를 통하여 보는 유목민족의 특징에 대하여 작성할 예정이다. 많은 관심 바란다.
'#5. 개복치의 기원 : 역사, 정치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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