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Eric Clapton - Layla(The Cream of Clapton)
https://www.youtube.com/watch?v=5dCSUD37qxQ
다시 보는 맨큐의 경제학 열일곱 번째 글이다. 정말 오랜만에 해당 주제로 포스팅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경제학자들의 생각,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에 대하여 알아본다. 우리의 목표는 경제학자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야 경제학자처럼 생각하고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전의 글이 궁금하다면 아래의 카테고리를 참고하기 바란다.
덩샤오핑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일화와 위대한 지도자가 된 덩샤오핑
1978년 중국의 제5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주석인 덩샤오핑(등소평, 鄧小平)은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중국에 초청하였다. 덩샤오핑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에게 이렇게 질문하였다.
"어떻게 하면 중국 인민을 굶주림에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이렇게 답변하였다.
"농민들에게 그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이 조언을 들은 덩샤오핑은 당시 중국의 집단농장체제를 폐지하였다. 대신 농민들에게 국유지를 임대해 주어 생산량의 일부만 중국 정부에게 세금으로 내도록 하였다. 또한, 농산물의 거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자유시장을 허용하였다. 그 뒤로부터 3년 뒤 중국인들은 기아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PS. 필자의 다음 포스팅은 아마 중국의 영웅 덩샤오핑에 대하여 포스팅할 계획이다. 덩샤오핑은 공산주의 정치 체제를 혁파하고 개혁 개방 정책을 펼쳐 중국에 자본주의 정치 체제를 수립한 지도자이다. 필자는 만약 덩샤오핑이 10년 이상 더 오래 살아서 중국의 경제 정책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면 과연 현재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에서 미국이 엄청나게 고전했을 것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그만큼 덩샤오핑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생애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는 1899년 5월 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하오스트리아 대공국 빈(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그의 성씨에 폰(von)이 존재하는 것을 보아 그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집안은 당대 저명한 학자 집안이었다.
그는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191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에 입대하여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였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 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패전하였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었다. 그 후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당시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귀족 집안의 성씨 접두사인 폰(von)을 이름에서 제외시키게 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한 때 사회주의자였다. 전쟁 중에 러시아 제국에 발생한 볼셰비키 혁명에 영향을 받았다. 사회주의 관련 경제학 서적을 접하면서 사회주의에 빠져서 경제학을 전공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알려져 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 심리학, 경제학 등을 배웠고 이 과정에서 카를 맹거(Carl Menger)와 프리드리히 폰 비저(Friedrich von Wieser)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 빈 대학교에서 만난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와 그의 저서 '사회주의'(Socialism, 1922)를 접한 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사회주의자에서 자유주의자로 전향하게 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1921년 법학 박사학위, 1923년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당시 오스트리아 경제 고문이었던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비서로 근무하였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대학교 제리마이아 쟁스(Jeremiah Jenks) 교수의 연구 조교로 근무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1년 만에 다시 귀국하였다.
그 후 1927년 오스트리아 경기연구소의 소장으로 임명되어 근무하였고 1931년 영국 런던으로 이주한 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1950년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사회윤리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말년에는 서독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의 종신교수로 임명되었다.
[ 참고 사이트 : 나무위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https://namu.wiki/w/%ED%94%84%EB%A6%AC%EB%93%9C%EB%A6%AC%ED%9E%88%20%ED%95%98%EC%9D%B4%EC%97%90%ED%81%AC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저서와 주장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1944년에 출간한 그의 명저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에서 사회주의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사회주의는 인류를 '노예의 길'로 인도하는 나쁜 이념이자 진보를 가장한 '악'이라고 주장한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경우, 독재의 위험이 뒤따른다고 경고하였으며 개인주의와 고전 자유시장경제의 포기까지 이르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 이로 인하여 개인과 시장은 자유를 상실하고 폭압적인 사회와 독재자의 출연으로 개인이 노예로 전락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계획이나 정책이라는 수단을 통해 인위적으로 바꾸려 들면 선한 의도와 상관없이 사태를 더더욱 악화시킨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영향력이 커진 정부(큰 정부)는 독재와 전체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 파시즘, 나치즘, 사회주의의 공통점은 모두 중앙 집권적인 계획에 있으며 개인을 억압하는 데 국가에게 힘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자신이 경제학자이지만 '노예의 길'은 정치서적이라고 단호히 주장해 왔다. '노예의 길'이 관통하는 사상은 자유와 민주주의이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사회주의자들이 '위대한 유토피아'라고 주장해 왔던 '민주주의적 사회주의'는 달성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이하, 민주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다. 민주주의적 사회주의 혹은 민주사회주의란 사회주의 경제 체제 안에서 기업의 노동자 자주경영을 강조하며 민주주의와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옹호하는 정치 이념이다. 즉, 사회주의의 커다란 틀 안에 민주주의를 이식하는 일종의 변종과 같은 주장이다. 과연 이 것이 가능한가?
현재 중국과 베트남이라는 국가가 존재한다. 이 두 국가의 공통점은 첫 째, 한 개의 정당이 정치를 장악한 일당독재체제이다. 둘 째, 정치는 사회주의, 경제는 자본주의를 채택하였다. 셋 째, 국가가 강력하게 경제 정책을 주도하여 성장하였다. 그리고 한 때, 군사독재정권이 장악하였던 대한민국 역시 정부의 강력한 경제 성장 정책과 모델로 인하여 경제 성장을 이룬 국가도 존재한다.
그래서 586 운동권들은 중국을 찬양한다. 자신들이 주장하였던 민주사회주의를 완성한 국가를 바로 중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발전을 보고 자신의 주장과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어쩌면 자랑스럽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주장은 결국 옳았다. 중국은 현재 시진핑 주석이 세 번이나 연임하였다. 이는 중국 공산당 역사에 유일무이한 현상이다. 비록 중국이 공산당 일당독재체제이지만 주석은 그 내부의 정파가 서로 돌아가면서 주석 직위를 맡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은 미중 패권 전쟁을 통하여 부동산 거품 붕괴, 무역 수지 급감 등 대내외적으로 매우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즉,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정책은 중국을 부강하게 만들었지만 시진핑의 독재 정책 및 인민 감시 체제 구축은 중국을 내부에서 병들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 참고 사이트 : 위키피디아, 민주사회주의, https://ko.wikipedia.org/wiki/%EB%AF%BC%EC%A3%BC%EC%82%AC%ED%9A%8C%EC%A3%BC%EC%9D%98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vs 존 메이너스 케인스
그렇다. 만약 필자가 이전에 작성하였던 존 메이너스 케인스 관련 포스팅을 읽어보았다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존 메이너스 케인스는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1970년대 초 석유 파동(오일 쇼크, Oil shock)이 발생하고 그 후 스태그플레이션이 심화되자 드디어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영국 마가렛 대처 총리와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 참고 사이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석유파동(石油波動),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8181 ]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소위 레이거노믹스(Reagannomics)를 펼쳤다. 주요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정부의 지출 축소
- 노동과 자본에 대한 소득세 한계 세율 부담 완화
- 정부 규제의 축소
- 인플레이션을 줄이기 위한 화폐 공급량의 조절
그렇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영향을 받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은 작은 정부를 추구하고, 세금 규제와 부담을 완화시켰으며 각종 규제를 축소하였다. 마지막으로 금리를 상승시켜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을 펼쳤다.
존 메이너스 케인스는 정부 주도하에 경제 정책을 펼쳐 한 국가의 경제를 부흥하고 발전시키는 케인스학파가 되었다. 그리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규제를 축소하며 세금 부과에 부담을 덜어주어 자유로운 시장 경제 체제 시스템을 공고히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경제 체제와 사상을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고 부른다.
케인스학파와 신자유주의학파간 대립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케인스학파들은 시장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발생하는 시장의 실패를 주장하면 신자유주의학파들은 금융위기가 정부 개입에 따른 정책의 부작용과 실패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두 학파는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기도 한다. 케인스학파의 정부 주도 정책이 문제가 발생하면 신자유주의학파가 나타나 위기를 극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장의 자유가 과도하여 발생하는 시장의 실패 문제가 발생하면 케인스학파가 다시 나타나 그 위기를 극복하게 만들었다. 마치 두 학파가 가위바위보 게임을 진행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두 학파 모두가 현재 미국 경제를 움직이고 있다.
대한민국에 세계화 바람이 불어왔던 1990년대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2022년 초반까지 우리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안에서 살아왔다. 각 국가들은 무역 장벽을 허물었고 자유롭게 무역하여 부를 축적하였다. 대한민국은 이 시기에 비록 IMF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미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와 FTA를 체결하였으며 반도체, 자동차 등 주력 제품을 수출하고 식량 및 자원을 수입하면서 경제 발전을 이루어왔다.
하지만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신냉전 체제가 시작되면서 두 학파가 모두 혼재되어 정책이 진행되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상황을 보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는 2022년 초 0.25%였던 기준금리를 현재 5.25~5.50%까지 끌어올렸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하여 미국의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렸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잡혔다는 신호가 나타날 때까지 고금리를 유지하거나 추가 금리 인상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2023년 12월 13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통하여 발표하였다. 즉, 연준은 신자유주의학파의 입장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다.
[ 참고 사이트 : 한겨레, 미 연준 기준금리 동결…내년 3차례 인하 시사에 증시 환호, 2023.12.14,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1120322.html ]
그런데 미국 연방 정부는 어떠한가? 미국 정부는 명목적으로는 예산을 최소한도로 동결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지속적으로 연방 정부의 예산이 '셧다운' 위험에 직면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예산에는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미국 정부는 예산의 한계에 직면했다고 말하고 있다. 필자는 미국 연방 정부가 인플레이션 때문에 예산을 추가 편성하기 어려워지자 우크라이나를 지원한다는 명분을 이용하여 예산을 대량 편성한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미국 연방정부는 2022년 2월 ~ 2023년 9월까지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예산은 약 1,100억 달러(약 145조 원)에 달한다. 이제 미국은 2023년 12월 29일 기준, 마지막으로 2억 5천만 달러를 우크라이나에게 마지막으로 지원한다고 발표하였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이용하여 케인스학파의 주장처럼 예산을 확대하고 큰 정부의 정책을 펼친 것이다.
[ 참고 사이트 : BBC NEWS 코리아, 미국의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2023.09.21,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rg8yy73gz8o ]
[ 참고 사이트 : 여성신문, 미국, 우크라이나 예산 바닥...2억5000만 달러 마지막 지원, 2023.12.29,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3817 ]
즉, 미국이 인플레이션이 쉽게 잡히지 않고 고용률이 왜 좋은지 이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연준은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상시켜 재정 확장을 막아왔지만 미국 연방 정부는 오히려 전쟁을 이용하여 재정을 확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케인스학파와 신자유주의학파가 동시에 정책적으로 진행된 역사적 사례가 과연 있을까?
글을 마치며
우리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의 정치적 경제적 사상을 관통하는 단어는 바로 자유(Freedom)이다. 자유로운 시장경제체제가 국가와 국가 구성원의 경제력을 부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의 저서 '노예의 길'을 통하여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사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대목은 위에 언급한 자유의 중요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와 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필자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우리 현대인에게 가르쳐준 지혜가 바로 이점이 아닐까라고 생각이 들었다. 즉, 경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정치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와 정치를 따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현재 직면한 경제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대응도 올바르게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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