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Two Steps From Hell - Sariel(Battlec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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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맨큐의 경제학 열여덟 번째 글이다. 이번에는 경제학자들의 생각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에 대하여 알아본다. 우리의 목표는 경제학자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야 경제학자처럼 생각하고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전의 글이 궁금하다면 아래의 카테고리를 참고하기 바란다.
밀턴 프리드먼의 생애
밀턴 프리드먼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대인계 이민자 가정의 출신으로 1912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가난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재봉사로 일하다가 고가철도 옆에서 초라한 잡화점을 운영하였다. 재봉사는 당시 근무환경이 매우 열악하였다.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고 후두염을 앓다가 밀턴 프리드먼이 15세가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밀턴 프리드먼은 1928년 16세의 나이에 러트거스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대학 시절에 온갖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아침에는 백화점에서 모자를 파는 점원으로 일했고 점심 무렵에는 학교 근처의 식당에서 음식을 날랐으며 밤에는 소방서에서 야간근무를 하였다. 그는 식사를 매우 급하게 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는 식당에서 급히 식사를 하고 대학교 오후 강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밀턴 프리드먼은 1932년 러트거스 대학을 졸업하고 1933년 시카고 대학에서 단 1년 만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35년부터 1937년까지 워싱턴에서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에 대한 소비통계를 작성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는 이 업무를 통해서 실증적 자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이후 그는 철저하게 경험과 통계적 근거를 토대로 자신의 이론을 정립해 나갔다. 그만큼 그의 주장은 신뢰성과 설득력을 얻게 될 수 있었다.
1935년부터 10년간 미국 재무부, 국립자원계획위원회 등에서 근무했다.
1946년 밀턴 프리드먼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원래 그의 박사학위논문은 1941년에 완성되었지만 논문의 내용이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켜 4년이 지난 후에야 출판되었다.
같은 해 밀턴 프리드먼은 시카고 대학교 교수가 되어 30년간 근무하게 된다. 가난한 집안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그의 이야기는 아메리칸드림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1976년 그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 받게 된다.
[ 참고 사이트 : 나무위키, 밀턴 프리드먼, https://namu.wiki/w/%EB%B0%80%ED%84%B4%20%ED%94%84%EB%A6%AC%EB%93%9C%EB%A8%BC ]
[ 참고 사이트 : 월간조선 뉴스룸,자유주의 사상가 列傳 (10) - 레이건·대처의 이념적 스승―밀턴 프리드먼 『입만 열면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거의 틀림없이 남들의 이익을 빙자하여 자신의 영달을 꾀하는 사람들이다』, 2004.3,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403100065 ]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와 주장
밀턴 프리드먼은 1962년 저서 자본주의와 자유(Capitalism and Freedom)를 출간하였다. 그가 이 서적을 통하여 주장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정부는 개입을 줄이고 개인과 시장의 자유를 확대시켜야 한다.
- 경쟁적 자본주의는 경제적 자유의 체제이며, 정치적 자유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 통화 공급을 매년 3~5%씩 늘려야 한다는 일관된 규칙을 가져야 한다.
- 변동환율제를 지지하는 브레튼우즈 체제(금본위제)의 종식, 모든 통화의 통제, 무역 장벽, "자발적인"수출 쿼터제의 종식
- 모든 형태의 국가 면허에 대하여 폐지해야 한다. 이러한 면허 제도는 잠재적인 경쟁자가 시장에 진입을 막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는 존 F. 케네디의 명언설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으로 유명하다.
존 F. 케네디 :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보십시오.
밀턴 프리드먼 :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라는 구절은 국가는 주인이고 시민은 하인으로 보는 시각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참된 자유인이라면 오히려 자신과 자기 동포들이 각자 자신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목표와 목적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정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우리의 자유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정부가 역으로 개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프랑켄슈타인 같은 억압적인 존재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밀턴 프리드먼은 자유에 대한 가장 큰 적은 권력의 집중이라고 주장하였다. 정부는 시민들로 하여금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이지만 권력이 정치의 손에 집중되면 정부는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변질되고 만다고 주장하였다. 즉, 그는 첫 째, 정부의 역할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둘 째, 정부권력은 분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케인즈 학파에 정면으로 부딪힌 학자 프리드먼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시장 경제의 내재적 결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밀턴 프리드먼은 1930년 대공황이 발생한 원인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다.
"대공황은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있음에도 중앙은행이 통화공급량을 대폭 축소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즉, 밀턴 프리드먼은 대공황의 원인이 잘못된 정부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 케인즈의 이론과 정면으로 반박하였으며 이를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입증하였다. 잘못된 판단에 의한 정부의 잘못된 통화량 축소 정책이 통화 교란의 결과를 만들었고 이것이 경제의 교란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화폐가 정말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밀턴 프리드먼은 경제 활성화와 경제 조절을 위해서는 재정정책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통화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교란의 주원인이 통화교란으로부터 기인하므로 이 통화교란을 철저하게 방지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를 우리는 통화주의(Monetarism)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알고 있다. 바로 코로나 19의 창궐과 미국의 막대한 통화공급 정책이었다. 그 결과 모든 자산이 펌핑되는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하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는 단 1년 만에 기준금리를 0.25%에서 약 5.5%까지 급격하게 올렸다. 연준이 이러한 선택을 한 근거는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를 적극 수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참고 사이트 : 연합뉴스, "통화주의, 폐기 30년만에 부활한 듯…오래가진 못할 것", 2023.10.06, https://www.yna.co.kr/view/AKR20231006119900009 ]
밀턴 프리드먼은 케인즈 학파의 경제 정책이 결국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1970년대에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대로 불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하여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밀턴 프리드먼의 경제 이론을 적극 채용하였다. 그 결과 미국은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였다.
글을 마치며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
이 명언은 밀턴 프리드먼이 말하였다. 정부가 정부지출을 확대하면 실업문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로지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고 주장한 것이다. 필자는 이전 포스팅을 통하여 현대화폐이론(MMT)과 달러라이제이션 간의 관계에 대하여 정리한 적이 있다. 만약 밀턴 프리드먼이 지금 살아있었다면 일본과 미국이 미친 짓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경제 공황을 막기 위하여 일본과 미국은 독이 든 성배를 마신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극심하자 연준은 통화량을 조절하기 위하여 고정금리는 1년 동안 0.25%에서 5.5%까지 끌어올렸다. 이러한 극단적인 통화 정책은 경제와 시장에 큰 충격을 준다. 마치 롤러코스터와 같은 시장 상황은 불확실성을 야기한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 1월 10일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였다. 대한민국 경제와 시장의 활성화를 위하여 대한민국 정부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자본을 투입하려고 한다. 밀턴 프리드먼의 입장에서 현재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과 방향성을 보자. 밀턴 프리드먼은 대한민국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할 것이다.
첫 째, 대한민국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 금리를 충분히 상승하지 않았다. 그 의미는 아직 대한민국에 통화량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화량이 많은데 다시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통화량을 공급하겠다는 정부 정책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야기할 것이다.
둘 째, 대한민국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경제를 활성화시키지 못한다.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경제 참여자로 하여금 경제 활동으로 인한 이익을 증대시킬 수 없다. 오로지 인플레이션만 발생할 것이다. 보통 인플레이션은 근로소득이 가장 늦게 상승하고 가장 작게 성장한다. 따라서 각종 재화의 가격 상승을 근로소득의 증가로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점차 근로소득으로 살아가는 경제 참여자들이 가난해질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자유를 강조하였다. 개인의 자유, 시장의 자유, 교육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전 세계가 무역을 하는 자유를 강조하였다. 그래서 그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학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나라는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을 맺고 수출을 통하여 경제적 부를 축적한 국가이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이자 식민 지배를 받은 국가가 전 세계에 원조를 아끼지 않고 세계 경제 10위의 대국으로 성장하였다. 만약 지금 밀턴 프리드먼이 살아있다면 우리나라를 보고 매우 뿌듯해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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